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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역사 관련104

고구려 모본왕은 과연 폭군일까? 부여 태후는 왕을 죽였나? 대무신왕에 이어 왕위에 오른 민중왕과 다음 왕인 모본왕의 삼국사기 기록은 맞을까? 혹시 후대에 자신들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조작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대무신왕의 아들 호동은 첫째 부인의 계략에 의해서 자결을 하였다고 나와있다. 여기에서부터 살펴보자. 호동의 어머니 호동의 어머니는 대무신왕의 둘째 왕비이고 갈사왕의 손녀라고 나온다. 그렇다면 갈사왕은 누구인지 살펴보자. 대무신왕 5년 4월, 부여왕 대소의 아우가 갈사수 가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왕을 자칭하였다. 이 사람은 부여왕 금와의 막내아들인데, 역사서에는 그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다. 처음에 대소가 살해되자 그는 장차 나라가 망할 것을 알고 자기를 따르는 자 백여 명을 데리고 압록곡에 이르렀다. 마침 사냥 나온 해두국왕을 죽이고 그의 .. 2021. 3. 18.
초기 고구려와 옥저, 그리고 동예 - 독특한 풍습과 문화 고구려의 동맹과 서옥제 초기 고구려는 압록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그 지역은 평지가 거의 없고 산만 가득한 지역이었다. 그들은 말을 타고 산을 돌아다니며 사냥을 하고 지냈다. 자연스럽게 말 타는 솜씨와 활 솜씨가 늘었을 것이다. 그런 실력으로 동쪽의 옥저를 털었다. 불쌍한 옥저를 해마다 털어먹으면서 지냈던 것이다. 농사도 짓지 않으면서 제천행사인 '동맹'을 지내며, 옥저의 농사가 잘 되길 바라기도 하였다. 옥저의 식량으로 신나게 놀고 먹었던 것이다. (지금의 일진과 빵셔틀도 아니고......) 부여에서 내려 온 주몽 때문인지 고구려의 풍속은 부여와 많이 닮아있었다. 하지만 독특한 결혼 풍습이 있었는데, 그것을 '서옥제'라 한다. 상남자인 고구려 남자들은 맘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당장 달려가 딸을 달라고 .. 2021. 3. 15.
대영웅 을지문덕과 살수대첩 이야기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고구려를 지켜낸 영웅 을지문덕. 하지만 을지문덕의 어린 시절이나 전쟁 외의 이야기는 알 수 없어 안타깝다.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대첩,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과 함께 3대 대첩으로 꼽히는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에 대해 알아보자. 영양왕 23년 서기 612년, 수양제가 공격을 개시한다. 612년 수나라의 양제가 고구려의 공격을 명령하였다. 좌 12군과 우 12군으로 나눠 진군시키고 평양으로 집합하게 한다. 군사의 총수는 113만 3천8백 명이었다. 군량 수송을 맡은 자의 수가 배는 되었다고 하니 300만이 넘는 대군이 출정을 하게 된 것이다. 얼마나 많은 숫자였는지 출발하는데만 40일이 걸렸다고 한다. 수나라 군대는 3월 중순에 요하를 건너기 위한 준비를 했다. 고구려군은 반대편에서 건너오는.. 2021. 3. 9.
부자관상-부자가 되는 관상은 따로 있을까 모든 사람들은 부자가 되길 원한다. 하지만 부자가 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다면 관상을 보면 부자가 될지 알 수 있을까? 예로부터 전해져 온 관상가들이 말하는 부자 관상에 대해서 알아보자. 코 - 재백궁 예로부터 "귀 잘생긴 거지는 있어도 코 잘생긴 거지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코는 재백궁이며, 재산궁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관상을 볼 때 코는 재물에 큰 영향을 끼친다. 어떤 코가 재운이 좋은 코인지 알아보자. 모양이 좋고 살집이 있어야 한다. 콧구멍이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 코가 얼굴에 비해 지나치게 작거나 커도 조화가 맞지 않아서 좋지 않다. 얼굴 전체와 조화를 이루어 위쪽은 약간 가늘고 아래로 내려올수록 점점 커지는 코가 가장 좋다. 귀 - 수견이(垂肩耳) 귀 중에 재운이 가장 좋은 귀는 수견.. 2021. 3. 8.
고구려 3대 왕 대무신왕, 나라와 백성을 사랑했던 무휼 고구려 3대 왕인 대무신왕은 유리왕의 셋째 아들이다. 이름은 무휼이고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고 지혜로웠다. 유리왕의 셋째 아들 무휼 유리왕에게는 6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와 둘째가 모두 일찍 죽고 무휼의 나이 11세에 태자로 삼는다. 무휼은 태자에 오르자마자 군사와 국정의 일을 맡는다. 그만큼 능력이 있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무휼의 어린 시절은 생각보다 순탄치 않았을 것이다. 유리왕은 첫째 도절이 요절하고 둘째 해명을 태자로 삼았다. 하지만 해명마저 황룡 국왕이 선물한 활을 부러뜨린 일로 자살하였다. 그리고 유리왕이 아끼던 여진 왕자도 요절하고 만다. 여진 왕자가 죽은 것은 무휼이 태자로 오른 후이긴 하지만 태자인 무휼보다 여진 왕자를 더 아낀 듯한 유리왕의 모습으로 보아 무휼은 유리왕 살아생전에는 고.. 2021. 3. 4.
유령선 미스터리- 메리 셀러스트호 사건, 사라진 선원들은 어디로 갔을까 유령선의 이야기는 많은 작품에서 나온다. 그들 중 많은 작품들이 메리 셀러스트호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했는데 이 사건은 아직까지 의문만 남긴 채 풀리지 않고 있다. 유령선의 발견 1872년 12월 4일 영국 상선인 '디 그라티아 호'는 항해도중 수상한 범선 하나를 발견하고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범선은 회신은 없고 불규칙한 움직임만을 보인채 항해를 하고 있었다. 디 그라티아 호의 선장인 데이비드 모어하우스는 메리 셀러스트 호를 알고 있었고, 브리그즈 선장과 개인적으로 술도 마신 적이 있었다. 그들은 좀 더 접근하여 살펴보았고 '메리 셀러스트 호'라는 걸 알게 된다. 모어하우스 선장은 어째서 자신보다 먼저 출발한 메리 셀 러스트 호가 목적지까지 도착하지 못했나 의아해했다. 디 그라티아 호의 일등항해사 올리버.. 2021. 3. 3.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 바보온달이 아닌 온달장군으로 기억되길 바라며......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이야기는 설레고 아름답지만 슬프다. 바보라고 놀림받던 온달이 평강공주를 만나서 장군이 되는 이야기는 당시 상황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과연 온달은 진짜 바보였을까? 이야기대로 평강공주와 결혼한 뒤로 온달이 장군이 된 것일까? 삼국사기의 온달 이야기를 보면서 재해석을 해보자. 삼국사기의 온달 온달(溫達)은 고구려 평강왕(平岡王) 때 사람이다. 용모는 구부정하고 우스꽝스럽게 생겼지만 마음씨는 빛이 났다. 집안이 몹시 가난하여 항상 밥을 빌어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떨어진 옷과 해진 신발을 걸치고 시정(市井) 사이를 왕래하니, 당시 사람들이 그를 ‘바보 온달’이라고 불렀다. 평강왕의 어린 딸이 울기를 잘하니 왕이 놀리며 말했다. “네가 항상 울어서 내 귀를 시끄럽게 하니, 자.. 2021. 3. 2.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 낙랑국과 낙랑군은 다른 곳인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15년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15년(서기 32)의 일이다. 여름 4월, 왕자 호동(好童)이 옥저(沃沮)에서 유람하고 있었다. 그때 낙랑왕(樂浪王) 최리(崔理)가 그곳을 다니다가 그를 보고 물었다. “그대의 얼굴을 보니 보통 사람이 아니로구나. 그대가 어찌 북국 신왕(神王)의 아들이 아니리오?” 낙랑왕 최리는 마침내 그를 데리고 돌아가서 자기의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그 후, 호동이 본국에 돌아와서 남몰래 아내에게 사람을 보내 말하였다. “네가 너의 나라 무기고에 들어가서 북을 찢고 나팔을 부수어 버릴 수 있다면 내가 예를 갖추어 너를 맞이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못하다면 너를 맞이하지 않겠다.” 이전부터 낙랑에는 북과 나팔이 있었는데, 적병이 쳐들어오면 저절로 소리.. 2021. 2. 27.
탈해 이사금, 석탈해 그는 어디에서 왔는가 신라의 4대 왕인 탈해 이사금은 확실하게 외지에서 온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정확하게 어디에서 왔는지는 아직까지 의문에 싸여있다. 도대체 석탈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삼국사기, 탈해 이사금 탈해 이사금(脫解尼師今)[토해(吐解)라고도 한다.]이 왕위에 올랐다. 이때 나이가 62세였다. 성은 석(昔)이며, 왕비는 아효부인(阿孝夫人)이다. 탈해는 본래 다파나국(多婆那國)에서 태어났는데, 이 나라는 왜국(倭國)의 동북쪽 1천 리 밖에 있다. 앞서 그 나라 왕이 여국(女國)의 딸을 맞아 아내로 삼았는데, 임신한 지 7년 만에 커다란 알을 낳았다. 왕이 말하였다. “사람이 알을 낳았으니 이는 상서로운 일이 아니다. 버리는 것이 마땅하리라.” 그 여인이 알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비단으로 알을 싸서 보물과 함께 궤짝.. 2021. 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