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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역사 관련/한국의 역사이야기21

대영웅 을지문덕과 살수대첩 이야기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고구려를 지켜낸 영웅 을지문덕. 하지만 을지문덕의 어린 시절이나 전쟁 외의 이야기는 알 수 없어 안타깝다.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대첩,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과 함께 3대 대첩으로 꼽히는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에 대해 알아보자. 영양왕 23년 서기 612년, 수양제가 공격을 개시한다. 612년 수나라의 양제가 고구려의 공격을 명령하였다. 좌 12군과 우 12군으로 나눠 진군시키고 평양으로 집합하게 한다. 군사의 총수는 113만 3천8백 명이었다. 군량 수송을 맡은 자의 수가 배는 되었다고 하니 300만이 넘는 대군이 출정을 하게 된 것이다. 얼마나 많은 숫자였는지 출발하는데만 40일이 걸렸다고 한다. 수나라 군대는 3월 중순에 요하를 건너기 위한 준비를 했다. 고구려군은 반대편에서 건너오는.. 2021. 3. 9.
고구려 3대 왕 대무신왕, 나라와 백성을 사랑했던 무휼 고구려 3대 왕인 대무신왕은 유리왕의 셋째 아들이다. 이름은 무휼이고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고 지혜로웠다. 유리왕의 셋째 아들 무휼 유리왕에게는 6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와 둘째가 모두 일찍 죽고 무휼의 나이 11세에 태자로 삼는다. 무휼은 태자에 오르자마자 군사와 국정의 일을 맡는다. 그만큼 능력이 있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무휼의 어린 시절은 생각보다 순탄치 않았을 것이다. 유리왕은 첫째 도절이 요절하고 둘째 해명을 태자로 삼았다. 하지만 해명마저 황룡 국왕이 선물한 활을 부러뜨린 일로 자살하였다. 그리고 유리왕이 아끼던 여진 왕자도 요절하고 만다. 여진 왕자가 죽은 것은 무휼이 태자로 오른 후이긴 하지만 태자인 무휼보다 여진 왕자를 더 아낀 듯한 유리왕의 모습으로 보아 무휼은 유리왕 살아생전에는 고.. 2021. 3. 4.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 바보온달이 아닌 온달장군으로 기억되길 바라며......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이야기는 설레고 아름답지만 슬프다. 바보라고 놀림받던 온달이 평강공주를 만나서 장군이 되는 이야기는 당시 상황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과연 온달은 진짜 바보였을까? 이야기대로 평강공주와 결혼한 뒤로 온달이 장군이 된 것일까? 삼국사기의 온달 이야기를 보면서 재해석을 해보자. 삼국사기의 온달 온달(溫達)은 고구려 평강왕(平岡王) 때 사람이다. 용모는 구부정하고 우스꽝스럽게 생겼지만 마음씨는 빛이 났다. 집안이 몹시 가난하여 항상 밥을 빌어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떨어진 옷과 해진 신발을 걸치고 시정(市井) 사이를 왕래하니, 당시 사람들이 그를 ‘바보 온달’이라고 불렀다. 평강왕의 어린 딸이 울기를 잘하니 왕이 놀리며 말했다. “네가 항상 울어서 내 귀를 시끄럽게 하니, 자.. 2021. 3. 2.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 낙랑국과 낙랑군은 다른 곳인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15년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15년(서기 32)의 일이다. 여름 4월, 왕자 호동(好童)이 옥저(沃沮)에서 유람하고 있었다. 그때 낙랑왕(樂浪王) 최리(崔理)가 그곳을 다니다가 그를 보고 물었다. “그대의 얼굴을 보니 보통 사람이 아니로구나. 그대가 어찌 북국 신왕(神王)의 아들이 아니리오?” 낙랑왕 최리는 마침내 그를 데리고 돌아가서 자기의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그 후, 호동이 본국에 돌아와서 남몰래 아내에게 사람을 보내 말하였다. “네가 너의 나라 무기고에 들어가서 북을 찢고 나팔을 부수어 버릴 수 있다면 내가 예를 갖추어 너를 맞이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못하다면 너를 맞이하지 않겠다.” 이전부터 낙랑에는 북과 나팔이 있었는데, 적병이 쳐들어오면 저절로 소리.. 2021. 2. 27.
탈해 이사금, 석탈해 그는 어디에서 왔는가 신라의 4대 왕인 탈해 이사금은 확실하게 외지에서 온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정확하게 어디에서 왔는지는 아직까지 의문에 싸여있다. 도대체 석탈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삼국사기, 탈해 이사금 탈해 이사금(脫解尼師今)[토해(吐解)라고도 한다.]이 왕위에 올랐다. 이때 나이가 62세였다. 성은 석(昔)이며, 왕비는 아효부인(阿孝夫人)이다. 탈해는 본래 다파나국(多婆那國)에서 태어났는데, 이 나라는 왜국(倭國)의 동북쪽 1천 리 밖에 있다. 앞서 그 나라 왕이 여국(女國)의 딸을 맞아 아내로 삼았는데, 임신한 지 7년 만에 커다란 알을 낳았다. 왕이 말하였다. “사람이 알을 낳았으니 이는 상서로운 일이 아니다. 버리는 것이 마땅하리라.” 그 여인이 알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비단으로 알을 싸서 보물과 함께 궤짝.. 2021. 2. 22.
온조와 비류, 백제를 건국한 사람은 누구인가 과연 백제를 건국한 사람은 온조일까? 삼국사기에는 비류가 백제 건국 시조라는 설도 있다고 전한다. 비류의 백제 건국설에서는 온조와 비류의 아버지가 주몽이 아니라 우태라는 해부루의 서손이라고 한다. 과연 온조와 비류의 아버지는 누구이며 백제 건국 시조는 누구인지 생각해보자. 삼국사기의 온조왕 설화 백제의 시조는 온조왕(溫祚王)이다. 그의 아버지는 추모(鄒牟) 혹은 주몽(朱蒙)이라고 한다. 주몽은 북부여(北扶餘)에서 난리를 피하여 졸본부여(卒本扶餘)로 왔다. 졸본부여 왕은 아들은 없고 딸만 셋이 있었는데, 주몽이 뛰어난 인물임을 알고 둘째 딸을 그의 아내로 삼았다. 얼마 후 부여왕이 죽고 주몽이 왕위를 이었다. 주몽이 아들 둘을 낳았는데, 맏이는 비류(沸流)이고 둘째는 온조이다.[혹은 주몽이 졸본에 이르러 .. 2021. 2. 19.
3세기 신라의 영웅 석우로 서불한 석우로 신라 시대의 왕족이자 장군이다. 내해 이사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인은 조분왕의 딸인 명원 부인이고 아들은 16대 왕인 흘해 이사금이다. 삼국사기의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 2년(서기 231) 가을 7월, 이찬 우로(于老)를 대장군으로 삼아 감문국(甘文國)을 토벌하여 격파하고, 그 땅을 군으로 삼았다. 4년(서기 233) 가을 7월, 이찬 우로가 왜인과 사도(沙道)에서 싸웠다. 바람을 이용하여 불을 질러 배를 불태우니, 적들이 물에 뛰어들어 모두 죽었다. 15년(서기 244) 봄 정월, 이찬 우로를 서불한(舒弗邯)으로 삼고 병마의 일을 겸하여 맡게 하였다. 16년(서기 245) 겨울 10월, 고구려가 북쪽 변경에 침입하였다. 우로가 병사를 이끌고 나가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 2021. 2. 16.
신라의 시조 혁거세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혁거세의 탄생 설화 삼국사기 제1권 신라본기 제1의 내용 중 혁거세의 탄생 설화이다. 시조의 성은 박씨, 이름은 혁거세(赫居世)이다. 전한(前漢) 효선제(孝宣帝) 오봉(五鳳) 원년 갑자(기원전 57) 4월 병진[정월 15일 이라고도 한다.]일에 왕위에 올랐다. 왕호는 거서간(居西干)이다. 이때의 나이는 열세 살이었으며 나라의 이름은 서라벌이었다. 이에 앞서 조선(朝鮮)의 유민들이 산골에 나뉘어 살면서 여섯 개의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첫째는 알천(閼川)의 양산촌(楊山村)이라 하고, 둘째는 돌산(突山)의 고허촌(高墟村)이라 하고, 셋째는 취산(觜山)의 진지촌(珍支村)[혹은 간진촌(干珍村)이라고도 한다.]이라 하고, 넷째는 무산(茂山)의 대수촌(大樹村)이라 하고, 다섯째는 금산(金山)의 .. 2021. 2. 14.
해모수와 주몽의 관계 '삼국사기'에 나온 주몽(추모)의 탄생 설화 부여왕 해부루가 늙도록 아들이 없어 산천에 제사를 지내 대를 이을 아들 낳기를 기원하였다. 어느 날 그가 몰던 말이 곤연에 이르렀는데, 말이 그곳의 큰 돌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임금은 이상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그 돌을 굴려보게 하니, 금빛 개구리 모양의 어린아이가 있었다. 해부루는 기뻐하며 "이 아이가 바로 하늘이 나에게 주신 아들이다."라고 하며 거두어 길러 이름을 금와라고 하고, 아이가 장성하자 태자로 삼았다. 훗날 재상인 아란불이 말하였다. "제가 하늘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늘이 말씀하시길 '장차 내 자손에게 이곳에 나라를 세우게 할 것이니 너희는 피하라. 동쪽 바닷가에 가섭원이라는 땅이 있는데, 토양이 기름져서 오곡이 잘 자라니 도읍을 정할만하다.. 2021. 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