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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15년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15년(서기 32)의 일이다.
여름 4월, 왕자 호동(好童)이 옥저(沃沮)에서 유람하고 있었다. 그때 낙랑왕(樂浪王) 최리(崔理)가 그곳을 다니다가 그를 보고 물었다.
“그대의 얼굴을 보니 보통 사람이 아니로구나. 그대가 어찌 북국 신왕(神王)의 아들이 아니리오?”
낙랑왕 최리는 마침내 그를 데리고 돌아가서 자기의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그 후, 호동이 본국에 돌아와서 남몰래 아내에게 사람을 보내 말하였다.
“네가 너의 나라 무기고에 들어가서 북을 찢고 나팔을 부수어 버릴 수 있다면 내가 예를 갖추어 너를 맞이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못하다면 너를 맞이하지 않겠다.”
이전부터 낙랑에는 북과 나팔이 있었는데, 적병이 쳐들어오면 저절로 소리를 내기 때문에 그녀에게 그것을 부수어 버리게 한 것이었다. 이에 최 씨의 딸은 예리한 칼을 들고 남모르게 무기고에 들어가서 북과 나팔의 입을 베어 버린 뒤에 호동에게 알려 주었다. 호동이 왕에게 권하여 낙랑을 습격하였다. 최리는 북과 나팔이 울지 않아 대비를 하지 않았고, 우리 병사들이 소리 없이 성 밑까지 이르게 된 뒤에야 북과 나팔이 모두 부서진 것을 알았다. 그는 마침내 자기 딸을 죽이고 나와서 항복하였다.
[낙랑을 없애기 위하여 청혼하고, 그의 딸을 데려다가 며느리를 삼은 후에 그녀를 본국에 돌려보내 그 병기를 부수게 하였다는 설도 있다.]
겨울 11월, 왕자 호동이 자살하였다. 호동은 임금의 둘째 왕비인 갈사왕(曷思王) 손녀의 소생이었다. 그는 얼굴이 아름답고 고와서 임금이 매우 사랑했으므로 이름을 호동이라고 지었다. 첫째 왕비는 호동이 적통을 빼앗아 태자가 될 것을 염려하여 임금에게 참소하였다.
“호동은 저에게 무례하게 대하고 자못 음행 하려 합니다.”
임금이 대답하였다.
“너는 호동이 다른 사람의 소생이라 하여 미워하느냐?”
첫째 왕비는 임금이 자기를 믿지 않음을 알고, 장차 화가 자기에게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울면서 말하였다.
“바라건대 대왕께서 몰래 엿보소서. 만약 그와 같은 일이 없다면 제가 죄에 대한 처벌을 받겠습니다.”
결국 대왕이 호동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어 그에게 죄를 주려 하였다. 어떤 사람이 호동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왜 스스로 해명하지 않는가?”
호동이 대답하였다.
“내가 만일 해명한다면 이것은 어머니의 죄악을 드러내는 것이요, 왕에게 근심을 더해주는 것이니, 이를 어찌 효라 할 수 있겠는가?”
호동은 곧 칼에 엎어져 자결하였다.
사관이 논평한다.
임금은 참소하는 말을 믿고 죄 없는 사랑하는 아들을 죽였으니, 그의 어질지 못함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호동에게도 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왜 그런가? 자식이 아버지에게서 책망을 들었을 때에는 마땅히 아들인 순(舜) 임금이 아버지인 고수(瞽)에게 했던 것과 같이, 조금 때리면 맞고 많이 때리면 피하여 아버지가 불의에 빠지지 않게 하여야 할 것이다. 호동은 이러한 행동을 할 줄 모르고 죽지 않을 일로 죽었다. 이는 작은 일을 삼가는데 집착하여 대의에 어두운 것으로, 옛날의 공자(公子) 신생(申生)의 죽음에 비유할 만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대무신왕 [大武神王]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김부식, 박장렬, 김태주, 박진형, 정영호, 조규남, 김현)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이야기는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호동왕자와 사랑에 빠진 낙랑공주가 자신의 나라인 낙랑국의 자명고와 나팔을 부수어 낙랑국이 멸망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낙랑공주는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했으며, 호동왕자는 계모인 왕비의 모략에 빠져 자결하게 된다는 슬픈 이야기이다.
중국의 낙랑군과 최리의 낙랑국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학계의 통설로는 낙랑군의 밑에 있던 영동 7현 지역의 소국이 독립하게 되는데, 거기에서 떨어져 나온 곳 중에 한 지역의 우두머리가 스스로를 낙랑왕이라 칭하고 낙랑국을 세웠다는 설이다.
#정리(개인적인 의견)
낙랑군에서 떨어져 나온 낙랑국은 아무래도 힘이 약해 공주를 고구려의 왕자인 호동과 정략결혼을 시켰을 가능성이 있다. 대무신왕과 호동은 공주를 이용해 낙랑국에 뭔가를 했고, 낙랑국은 고구려의 침입으로 멸망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대무신왕의 둘째 왕비의 아들인 호동이 태자로 오를 것 같자 첫째 왕비가 호동왕자를 유혹하지만 실패한다. 그래서 왕비가 왕에게 호동왕자를 음해하였으며 호동은 억울하지만 사실을 말하면 혼란스러워질 것을 두려워해 자결하고 만다. 대무신왕은 호동왕자를 믿었던 것 같지만 다혈질인 호동왕자는 순간 참지 못하고 안타깝게 죽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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