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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공주2

고구려 3대 왕 대무신왕, 나라와 백성을 사랑했던 무휼 고구려 3대 왕인 대무신왕은 유리왕의 셋째 아들이다. 이름은 무휼이고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고 지혜로웠다. 유리왕의 셋째 아들 무휼 유리왕에게는 6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와 둘째가 모두 일찍 죽고 무휼의 나이 11세에 태자로 삼는다. 무휼은 태자에 오르자마자 군사와 국정의 일을 맡는다. 그만큼 능력이 있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무휼의 어린 시절은 생각보다 순탄치 않았을 것이다. 유리왕은 첫째 도절이 요절하고 둘째 해명을 태자로 삼았다. 하지만 해명마저 황룡 국왕이 선물한 활을 부러뜨린 일로 자살하였다. 그리고 유리왕이 아끼던 여진 왕자도 요절하고 만다. 여진 왕자가 죽은 것은 무휼이 태자로 오른 후이긴 하지만 태자인 무휼보다 여진 왕자를 더 아낀 듯한 유리왕의 모습으로 보아 무휼은 유리왕 살아생전에는 고.. 2021. 3. 4.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 낙랑국과 낙랑군은 다른 곳인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15년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대무신왕 15년(서기 32)의 일이다. 여름 4월, 왕자 호동(好童)이 옥저(沃沮)에서 유람하고 있었다. 그때 낙랑왕(樂浪王) 최리(崔理)가 그곳을 다니다가 그를 보고 물었다. “그대의 얼굴을 보니 보통 사람이 아니로구나. 그대가 어찌 북국 신왕(神王)의 아들이 아니리오?” 낙랑왕 최리는 마침내 그를 데리고 돌아가서 자기의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그 후, 호동이 본국에 돌아와서 남몰래 아내에게 사람을 보내 말하였다. “네가 너의 나라 무기고에 들어가서 북을 찢고 나팔을 부수어 버릴 수 있다면 내가 예를 갖추어 너를 맞이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못하다면 너를 맞이하지 않겠다.” 이전부터 낙랑에는 북과 나팔이 있었는데, 적병이 쳐들어오면 저절로 소리.. 2021. 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