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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역사 관련/한국의 역사이야기

대영웅 을지문덕과 살수대첩 이야기

by 은색꿀벌 2021.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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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네일-을지문덕과살수대첩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고구려를 지켜낸 영웅 을지문덕. 하지만 을지문덕의 어린 시절이나 전쟁 외의 이야기는 알 수 없어 안타깝다.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대첩,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과 함께 3대 대첩으로 꼽히는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에 대해 알아보자.

 

 

 영양왕 23년 서기 612년, 수양제가 공격을 개시한다.

612년 수나라의 양제가 고구려의 공격을 명령하였다. 좌 12군과 우 12군으로 나눠 진군시키고 평양으로 집합하게 한다. 군사의 총수는 113만 3천8백 명이었다. 군량 수송을 맡은 자의 수가 배는 되었다고 하니 300만이 넘는 대군이 출정을 하게 된 것이다. 얼마나 많은 숫자였는지 출발하는데만 40일이 걸렸다고 한다.

 

수나라 군대는 3월 중순에 요하를 건너기 위한 준비를 했다. 고구려군은 반대편에서 건너오는 적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드디어 고구려와 수나라의 첫 번째 싸움인 요하 전투가 벌어진다. 수나라 군대는 하류지역에서 다리를 만들어 강을 건너려고 하였으나 고구려군의 뛰어난 활 솜씨로 건너지도 못하고 크게 패한다. 이때 수나라 1군 총사령관 맥철장과 전사웅, 맹차 등의 장군들이 죽게 된다. 

 

수양제가 다시 소부감 하조에게 명하여 건너게 하였고, 모든 부대가 건너와 큰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로 고구려군이 밀리게 되면서 수나라군은 계속 진군하여 요동성을 포위한다.

 

 

 무너지지 않는 요동성과 분노한 수양제

당시 요동성의 성주는 누구인지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수성에 재능이 있는 장수였던 것 같다. 수나라의 대군은 6월까지 성 하나도 함락하지 못하였다. 수양제는 분노하여 말했다. 

“너희들은 벼슬이 높다고, 혹은 가문과 세도를 믿고 나를 어리석은 자로 취급하려고 하는가? 전일 내가 도읍에 있을 때 너희들이 내가 이곳에 오는 것을 원하지 않은 것은, 단점이 드러날까 두려워했기 때문임을 알겠구나. 이제 내가 여기에 온 것은, 너희들의 잘못된 행실을 판단하여 목을 베려는 것이다. 그런데도 너희들은 지금 죽는 것이 무서워 힘을 쏟지 않고 있으니, 내가 너희들을 죽일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는가?”

분노한 수양제의 모습에 두려워한 장수들은 별동대를 보내 고구려 수도인 장안성을 직접 공격하고자 한다. 수나라 해군이 이미 평양에서 가까운 대동강 입구에 있었기에 그들과 힘을 합치면 수도를 함락할 수 있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30만 5천 명의 별동대는 장안성으로 이동한다. 병사들은 각자 100일 분의 식량을 들고 행군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무게가 너무 무거워 몰래 식량을 버리는 일이 잦았다. 결국 중간쯤 갔을 때 군량은 이미 거의 떨어지고 말았다. 

 

 가짜로 항복한 을지문덕

수나라의 별동대가 압록강에 이르자 을지문덕은 적의 약점을 알기 위해 가짜로 항복을 하는 척 사신으로 직접 방문한다. 수양제는 미리 고구려왕이나 을지문덕이 찾아오는 기회가 있으면 사로잡으라고 우중문에게 명하였었다. 하지만 우중문은 유사룡의 설득으로 을지문덕을 그냥 보내주게 되었고,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된다. 수나라 별동대는 압록강을 건너 을지문덕을 추격하였다. 을지문덕은 그들이 굶주린 것을 알고 더 피로하게 하기 위하여 싸울 때마다 도망친다. 우중문은 하루에 일곱 번을 싸워 모두 이겼고, 그로 인해 자신감이 생겼다. 그렇게 별동대는 평양성 30리 떨어진 곳에 진을 구축했다. 

 

 

 살수대첩

진을 치고 있는 우중문에게 을지문덕은 시를 지어 보낸다.

그대의 신기한 전략은 하늘의 이치를 알았고
기묘한 계책은 땅의 이치마저 통달했네
싸움에 이겨 공이 높았으니
만족한 줄 알았거든 이제 그만 멈춤이 어떠하냐

그때서야 군량도 없는 자신들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퇴각한다. 을지문덕은 퇴각하는 적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쫓기던 그들이 지금의 청천강인 살수에 이르렀다. 그리고 수나라군이 강을 반쯤 건널 때 을지문덕은 총공격을 시도했다. 수나라군은 우왕좌왕하며 강물에서 허우적거리다 고구려군에게 죽게 된다. 그렇게 대패한 수나라군은 돌아간 자가 2,700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30만 5천 명의 대군이 거의 전멸하게 되었고 살수대첩에서 크게 패한 수양제는 서둘러 도망가게 된다. 

 

#마치며

20세기 초 역사가 단재 신채호는 이때 영양왕이 을지문덕과 함께 수나라를 공격하였으면 천하를 제패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전쟁 후의 을지문덕의 이야기는 더 이상 전해지지 않는다. 과연 을지문덕은 그 후로 어떤 삶을 살았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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