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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역사 관련/한국의 역사이야기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열사의 그 날

by 은색꿀벌 2022.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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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 나무위키 펌
영화 전태일 스틸컷

1970년 11월 13일 '그날'

평화시장 재단사였던 전태일은 1970년 11월 13일 분신자살을 기도했다.
국립의료원을 거쳐 성모병원으로 옮겼으나 저녁 10시쯤 명을 달리했다.

"기업주는 근로기준법을 지켜달라. 15,16세의 어린아이들이 일요일도 없이 
하루 16시간씩 혹사당하고 있으니 당국은 이런 사태를 시정해달라"
전태일은 호소하면서 미리 준비해뒀던 휘발유로 [근로 기준법해설] 이란 책을 태우려다
제지를 받고 자기 몸에 불을 지른 것이다.

그는 분신하기 전, 이 말을 유언으로 남긴다.

근로 기준법을 지켜주고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영화 전태일 스틸컷

전태일 열사의 활동


삼 년 전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 후, 서울로 올라와 평화시장에서 재단 일을 배워오다
피복 제조 근로자들의 친목단체인 삼동회를 조직하고 회장직을 맡았다. 
회장직에 있으면서 근로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싸우다 업주에게 해고까지 당했다. 
휴직 상태에 있으면서 근로기준법을 연구해오다 다른 곳에 취업하지만 근로자들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또 해고를 당한다. 

전태일은 백사십여 명의 동료들의 처우 실태를 조사하여 근로조건 개선을 서울시와 노동청 등에 
진정하였으나 별다른 움직임이 없어 항의 농성에 나선 것이었다.

 

영화 전태일 스틸컷

25년 후

25년이 지난 1995년, 청년 노동운동가인 전태일의 이야기는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다시 태어난다.
25년이 지났지만 1995년 당시에도 재단사의 일은 고됬고, 작업환경은 열악했다. 
참고로 영화는 일반인 7,648명이 후원금을 모아 제작비를 마련했고, 엔딩 크레디트에 모두 소개되었다. 
가장 많은 이름이 엔딩 크레딧에 실린 영화라는 기록이 있다.

 

영화 전태일 스틸컷

그리고 다시 25년 후, '지금'

또다시 25년이 넘게 지난 지금, 우리는 당시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평소 잊고 지내던 누군가가 피땀을 흘려 이뤄낸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아직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곳에서 착취를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부디 고통받는 사람들이 법의 보호를 받아 보다 나은 환경으로 나오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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